흔한 한국인처럼 나는 조금 무색무취의 어른으로 자랐다.
이전 캐리어 글에서도 언급했듯, 남들이 당연한듯 가지고 누리지만 나는 누리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동경부터 시작하게 되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보다 남들눈엔 뭐가 좋아보이는지를 생각하면서 어른이 되었다.
그런 내가 조금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친구들과 푸드코트에 가서 음식을 주문할때였다.
보통의 음식점에서 먹고싶은 것을 함께 주문하던 것과 달리, 푸드코트에서는 내가 먹고싶은 음식을 혼자 주문해야한다.
그럴때마다 나는 뭘 주문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기분을 느꼈다.
그냥 아는 음식을 주문하면서 그 순간들을 지나쳐왔지만, 그런 경험이 연장되면서부터 머릿속에서는 '도대체 나는 뭘 좋아하는거지?' 하는 생각까지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대 초반 나는 배낭여행으로 튀르키예를 한달정도 다녀왔었다.
정말 많은 것들을 남긴 여행이었지만, 주변인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나는 튀르키예에 대해 잘 알지도, 관심이 있지도 않았다.
으레 그러하듯이 20대엔 내 돈을 모아 해외로 배낭여행을 가야한다는 이상한 의무감때문에 20대 초반에 방학동안 거의 쉬지 않아가며 모았던 돈으로 나는 튀르키예 배낭여행을 떠났다.
물론 그곳에서 나는 많은 아름다움을 봤고, 많은걸 느끼는 여행을 했다. 그치만 다시 돌아봐도 내가 왜 튀르키예를 가고싶었는지, 무슨 이유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는지 생각해보면 그냥 남들도 그래서. 그게 이유였다.
비슷한 시기에 영화를 보고 프라하와 부다페스트에 가보고 싶었다며 여행을 떠났던 어떤 친구의 이야기에 나는 참 작아졌던 것 같다.

푸드코트 이야기로 돌아오면, 내 오랜 친구 A는 좋아하는 음식이 정말 많다.
나는 음식먹는 것 자체는 좋아하지만, A처럼 가보고싶은 맛집이나 먹어보고싶은 음식이 다양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늘 그녀가 가고싶어하는 맛집에 가보고, 그녀가 추천한 메뉴를 선택했다.
A는 내가 메뉴를 고르는 힘듦을 덜어주기도 했지만, 늘 적극적으로 먹고싶은 것, 가보고싶은 곳이 넘치는 친구였다.
그런 내 눈에 A는 늘 본인이 뭘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어느 날 내가 유난히도 좋아하는게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별것아닐지 모르는 그 모습이 반짝반짝 빛난다고 느껴지기 까지 했다.
자기가 뭘 좋아하는건지 아는 사람은 빛나는구나
그저 음식을 잘 즐기는 친구를 보다보니 그런 명제를 나도 모르게 깨달았었던 것 같다.
다만 그말은 반대로 말하면 본인이 좋아하는 것이 확실하지 않은 사람은 매력이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때부터 나는 의식적으로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싫어하는게 무엇인지 내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고 정말 애썼던 것 같다.
튀르키예 여행을 마치고 난 20대 초반중반 무렵, 내가 유난히도 좋고 싫음이 부족하단것을 느끼면서 종종 네이버메모장을 켜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생각날때마다 적어두게 되었다.
처음엔 큰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었고, 당시엔 오히려 단순한 생각이었다.
무얼 좋아하냐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해야할 일들을 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왜 라는 대답을 하지 못해도 일단 좋았다는 기분이 들었다면 적어두었다.
오랜만에 네이버 메모장을 열어 적어둔 내용을 보니, 아주 사소한 내용이 적혀있다.
예를 들면 생체리가 좋다던지, 시트러스가 들어간 베이커리류, 상탈향 같은 것들.
재밌게도 이런 것들을 적어나가면서부터 조금 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명확해졌다.
정말 좋아하고 사랑한다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구체적이진 않았다. 그냥 저것들이 좋아진 순간에 좋았다는 감정말고는 모르겠다는 상태였지만 그것들이 날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적어도 그런것들을 구체적으로 적어나갈때마다 내가 무색무취의 사람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재미있었던 것은 내가 의식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명확히 하려고 할때마다 사람들은 그게 내 특징과 개성인 것 처럼 기억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고집하거나 드러낸다면 주변인들이 나를 성가시고 고집있는 사람이라고 느낄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명확하게 할때마다 사람들은 반대로 그것들을 보면서 나를 떠올려줬다.
기념품을 고를 땐 내가 좋아하는 노랑색과 보라색을 생각해줬고,
과일을 고를땐 내가 좋아하는 체리를 먼저 떠올려줬으며,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과 관련된일이 있으면 나에게 제일 먼저 연락해주곤 한다.
지금와서 떠올려보면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묶어둔 것을 취향이라고 부르지 않나 싶다.
어느 인터넷 글에서 취향이 없는 사람은 매력이 없다는 내용을 봤었는데, 아마도 이런 맥락에서 말하지 않았을까?
그냥, 어쩌다보니, 남들이해서, 별생각없이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관심이가서, 경험해보니 멋져서 라고 하는 사람이 빛나보이는건
어떻게보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어릴적 누군가의 취향이라고 한다면 굉장히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이유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실은 이런 작고 단순한 것들이 모이고 모여서 하나가 된 것이었다. 이제야 알겠다.

'생각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새로 캐리어를 구매한 날 (0) | 2025.11.02 |
|---|---|
| 완벽하지 않은 내가 완벽해지는 과정 (0) | 2023.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