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 또래들 사이에서 어울리며 가장 버겁고 힘들다고 느낀 순간중에 하나는 모두가 당연히 갖추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것들을 나만 가지고 있지 못하는 감정이었다.
특히 그중 하나가 가방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을 갈때 당연히 여행용 가방을 갖추고 있을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행 경비에 가방의 값을 포함시키지 않지만, 제대로 여행의 목적을 갖춘 가방을 가져본적 없는 사람에겐 떠나기 위해 지출해야하는 것은 최초의 가방을 구매하는 값 부터 시작이다.
나는 그런것들을 가져보지 못한 환경에서 주섬주섬 하나씩 끌어모아 그럴듯하게 꾸며내어 살아내면서, 언제나 제 목적으로만 사용하는 물건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등산을 하러 떠나면 등산목적에 맞게 만들어진 등산가방.
해외여행을 떠나면 튼튼하고 좋은 브랜드의 캐리어.
1박 2일 여행을 떠날땐 그에 맞게 설계된 보스턴백.
학교에서는 스포츠 브랜드의 유행에 맞게 나온 백팩.
그런것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채로 어영부영 모든것을 흉내내며 살아가다보니, 급급하게 만들어진 싼 물건들로 내 옷장속 가방은 채워졌다.
관련한 가장 오래된 기억 중 하나는 초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을 떠나던 날이었다.
아무도 가르쳐준적이 없었지만 수학여행날 아침 아이들은 모두 비슷한 가방에 짐을 싸서 나타났다.
캐릭터가 그려지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지만 모두 사각형으로 펼쳐지는 쇼핑백처럼 생긴 비닐 가방에 수학여행 짐을 싸서 나타난 것이었다.
타포린백이라고 불리는 2000년대 수학여행 가방 필수품 가방이다.
수학여행 가방으로 검색하니 우리동네만 유행이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분명 그 누구도 수학여행에 그런 가방을 들고 와야 한다고 가르쳐준적도 없었지만 모두들 그 가방을 들고 나타났고,
나는 그냥 옷장에 있던 할머니의 백팩에 짐을 빽빽하게 넣어서 갔던 기억이 난다.
수학여행을 위해서 가방을 산다는 생각을 해본적 없는 집에서 자란 내 경험이 현실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그게 내가 느낀 작은 열등감이 마음에 자리잡았던 순간인 것 같다.
그 후로도 가방뿐 아니라 많은 물건들에서 나는 혼자만 동떨어진 기분을 느끼곤 했다.
모두 유행하는 힐리스를 신지만 나는 시장에서 사온 1-2만원짜리 브랜드 없는 운동화를 신었고,
ask와 리바이스가 유행하던 시절 가짜 아디다스가 적혀있는 티셔츠를 입고 졸업사진을 찍었다.
어쩐지 나는 비싼물건을 갖지 못한 것보다 그 사이에 보통의 사람으로 어울리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돈이 없는 것은 부차적이었고, 집안일로 고향을 떠나 이곳저곳을 떠돌고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되면서
나는 가정과 학교에서 사람관의 관계를 읽고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할 시기를 많이 놓쳤고, 그것을 따라갈 수 없음이 외로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정착해 살며 성인이 되어서도 자금의 여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제 목적에 맞는 돈을 제 값주고 구매하는 삶을 가지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도 내가 몇번 쓰지못할 물건을 구매하는 것은 알았지만, 상황에 맞게 급급한 물건을 매번 마련하기엔 내가 가진 돈은 부족했고 누리고 싶은 상황에 대한 욕심은 많았다.
그래도 눈치껏 따라가며 내안에 난 구멍들을 채우고 싶었다.
하지만 조금씩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안정되면서 다른 사람들이 쓰는 보통의 브랜드에서 제 목적을 가진 물건들이 하나 둘씩 늘어날때마다
나는 이상하게도 내 스스로가 채워지고, 내게 난 구멍이 메꿔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정상적인 사람의 범위에 들어간다는 기분을 느낀다는 것이 우스웠지만, 정말 그런말 밖에는 표현하기 어려웠다.
상황에 맞추어 급히 싸구려 물건으로 채운 삶이 아니라, 적당한 돈을 들여 다른이들이 사는 물건을 산다는게 나한테는 그런의미가 됐다.
물론 이제는 내가 그렇게 바라던 정상범주를 넘어서 그 안에서 내 개성과 취향을 찾는게 익숙해질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가끔은 몰개성해보여도 남들이 다 가진 어떤것을 내가 가졌을때 느끼는 편안함과 안정감은 말로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를 채워준다.
그래서 클래식한 물건들에 더 관심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이전에 출장중에 망가졌던 싸구려 캐리어를 버리고, 곧 떠날 여행을 위해 좋은 기능을 가진 새 캐리어를 구매해 언박싱 하고 나니
또 내 안에 있던 작은 결핍된 아이가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것을 느낀다.
이건 꼭 좋은 캐리어를 구매해서가 아닌 것 같다.
어린날 남들에게 비슷하게 맞추기 위해 급하게 인터넷으로 사서 지퍼가 뭉개지고, 장기비행 한번에 박살난 몇만원 짜리 캐리어가 아니라
여행이라는 목적에 맞게 잘 만들어진 브랜드의 캐리어를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은 감정이 들어서, 그래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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